國家위해 자원입대한 해병의 죽음 사실관계 밝혀야..

國家위해 자원입대한 해병의 죽음 사실관계 밝혀야..

newsworld21 0 6,836 2019.06.25 09:09

海兵隊 자원입대김병춘 해병의 억울한 죽엄.

海兵隊 자원입대 한 1969년 04.16. 셋째아들이 죽엄 되 나무상자에 유골함이 도착 집안은 온통 쑥대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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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김병춘님의 사망전 신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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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김병춘님의 사망전 병적증

1969.01.06. 어께에 붉은 띠를 두르고 해병대에 자원입대 한 김병춘은 훈련소 입소일을 앞두고 고향집인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 252번지를 떠났다.


 ▶자살이란 은폐와 진실

혹독한 추위와 손발이 터지며 받은 훈련기간인 1969.01.08.부터~ 1969.03.31.까지 해병훈련을 마치고 해군해병 사단으로부터 자대배치를 받아 1969.04.16. 자대배치 받은 경북 영덕의 한 마을에서 M1소총으로 배꼽총상으로 싸늘한 죽엄으로 발견되었다.

자살의 의문점-M1소총 총구길이가:109cm, 구경:7.62mm,  M1소총은 총구 길이가 길어 장구 없이는 배꼽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길 수 없다.

 

훈련마치고 자대배치 받고 온 부대

해안경계를 담당해온 부대 내에서 훈련 마치고 전입 온 신입 해병을 같은 내무반 선임들이 순검이 끝난 후 빵을 사오라며 구타와 폭언과 심한 폭행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인근 주민에게 간곡히 부탁한 종이 한 장의 쪽지는 경북 영덕 근무지에서 김포군 대곶면 거물대리250번지 집으로 지인 편으로 연락이 왔으며 김병춘 해병은 고향집 부친과 큰 형님이 사시는 곳에 돈이 급하니 돈을 붙혀 달라는 것이었다.

 

미쳐 돈을 붙이지 못하였고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군에 갔다 온 형님들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급한 전보였다고 했다.

 

이미 김병춘은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전보를 당시 김병익님이 먼저 받으시고 당시 김건식 부친에게 전하자 집안은 발칵 뒤집어 진 상태다.

그렇게 집안에서 사고소식을 전해들은 가족들은 가슴을 조리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급한 전보가 또 집으로 전달되었고 사망했다는 전보다.

그것을 본 당시 김병익님과 김건식님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신 것이다.

 

에서 전보가 온 것은 김병춘 해병이 사망했다는 전보였다.

해군해병 당시 에서 보내온 전보는 급하게 으로 와달라는 것이다. 곧바로 가슴을 추스르고 집안으로 알렸고, 당시 매제인 (생존)박영식님과 김병익님은 해병대 시신이 안장되 있는 현장으로 가셨다.

군에 들어간 김병익님과 (생존)박영식님은 군의 강요로 인한 화장 동의서를 해야만 했다는 증언이다.

1주일 넘게 군 인근에서 기거하면서 부대 내 발생한 구타로 인한 사망자 김병춘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자살자로 내몰아 배꼽에 총상이 발생 한 것이라며 자살자로 군내부에서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영덕의 한 마을 비닐하우스 옆에 누워 있었다는 밭은 김병춘의 밭엔 M1 소총이 있었고 배꼽에 총상을 입은 채 사망이라는 것이다.

 

[의문] 군사 독재시대의 진실왜곡과 은폐된 사건들..

군에 갔다 온 NewsWorld21 기자인 나 역시도 1983년 당시 구타가 말도 못하게 심했고 성추행도 심했다.

훈련소 훈련을 할 때 M1소총으로 훈련을 받았고 영점사격과 장, 단거리 사격에 임하였다.

총구 길이가 큰 M1소총으로 배꼽총상이라는 사망자 사인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

배꼽 총상이라는 김병춘님의 큰형님인 당시 김병익님도 1962년 육군25사단에서 군무를 마치셨기에 더더욱 믿기 힘든 상황이 발생 한 것이다.

화장 동의서를 재촉하며 군에서 당시 무언의 협박을 받았다는 제기도 있었다.

[의문1] 김병춘해병의 화장 동의서를 급하게 동의하라고 했는지 그것이 의문이다.

[의문2] 김병춘은 M1 소총으로 배꼽에 맞고 자살이라고 군은 사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M1 소총으로는 절대 배꼽에 총상이 불가능했다.

[의문3] 김병춘이 비니하우스 옆에 사망 한 채 쪼그리고 누워 있었다는데 억화(군화)를 신고 있었고 주변엔 M1소총 방아쇠를 밀거나 당길 수 있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의문4] 김병춘의 집안은 자살할 만한 집안에서 태여 난 것이 아니였고, 건강하며 운동신경이 발달함과 동시 정신상태는 아주양호 하다고 덧붙였다.

 

김병춘은 김포군 대곶면 거물대리250번지에서 태여 날 당시 가족관계는 부친인 김건식님, 어머니 김점분님 부모님과 위로 누나4, 위로 형님 2분이었고. 김병춘은 8번째 막내아들인 것이다.

가족은 모두 출가한 상태였고 김병춘은 태여 난 곳에서 자라며 성인이되 대한민국 국민의 국방의 의무인 해병대에 자원입대 하여 그런 변을 당한 것이다.

 

그로인하여

부친인 김건식님은 충격으로 건강을 급속도로 잃으셨고 노모가 90세신 연세에 두시고 자식문제로 속앓이를 하시다가 김건식님은 먼저 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떠나셨다.

 

김병춘의 큰형님 당시 김병익님 역시도 김병춘이 돈을 붙혀 달라는 전보에 급히 붙이지 못한 죄책감고 사망한 동생의 슬픔을 밝히지 못하시고 끝내 병환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청춘에 세상을 떠나셨다.

 

김병춘님의 장손인 김00 조카가 여러 차례 국민권익위 해군사령부 등에 김병춘님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였지만 관계자들은 속시원한 답변을 회피하며 사건의 전개 등을 알리지 않았었다.

 

대한민국 국방의 의무인 남자들은 에 보내놓고 지금이나 그 때나 얼마나 많은 조바심으로 걱정을 하고 계셨을 까 하는 마음이다.

 

폐쇄적이었던 군내부에서 발생된 사망사건을 은폐했다면 당연히 진상규명조사위에서 밝혀야 할 것이며 억울하게 사망한 50여년 망자의 명예 또한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로인한 가정이 파탄되고 많은 가족이 정신적 충격과 가족의 우울한 삶들은 반드시 재규명 되어 명예를 실추시키지 아니하고 명예를 되돌려 줘야 할 것이다.

 

국가는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한 가족사를 위해서라도

현제 김병춘의 형님 가족 등 조카와 자손들은 모두 대한민국 남자로서 현역으로 복무하였으며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전역 후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국가는 그 유족들 위해서라도 사망자 김병춘님의 친형님께서 생존해 계시고 있으며 둘째 형님의 소원인만큼 김병학님은 억울하게 죽은 김병춘 동생의 진상을 꼭 밝혀달라는 것을 신신당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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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출범

군사 독재시대 軍복무 중 발생한 억울한 사망사고를 재조사 꼭 밝혀져야 유족들이 49년의 잃어버린 세월을 되 찾을 것이다.

 

NewsWorld21 Euigyun Ki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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